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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감시 9년간 방기…“국정농단, 언론도 공범” 신뢰 추락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ㆍ‘기레기’가 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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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 17개 지부 파업 참가자들이 모여 공동 출정식을 열고 있다./우철훈선임기자

 

“우리가 영정을 들고 KBS 찾아갔을 때, 그 앞에서 울부짖을 때, 과연 여러분들 가운데 누구 하나 미안하다고 말한 사람 있었습니까.” 

 

지난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 불금파티’에서 KBS와 MBC 파업을 지지하며 첫 발언을 한 사람은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그는 ‘돌아오라! 마봉춘(MBC) 고봉순(KBS)’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행사에서 두 공영방송의 과거 보도행태를 격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국회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양심을 걸고, 목숨을 걸고, 삶을 내걸고 언론의 독립성을 따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참사를 왜곡보도한 공영방송에 대한 질타들로 채워졌다. 그는 “언론은 세월호가 침몰한 그날 사망보험금을 얘기했다. 해경이 에어포켓 이야기를 할 때 그게 거짓말이라고 한 사람이 여기 누가 있느냐”면서 “팽목항에서 나를 두 번 죽인 건 여러분의 사장이 아니라 여러분”이라고 했다. 집회에 참석한 KBS 기자들과 아나운서들 사이에선 “고개를 들 수 없다”는 자성이 흘러나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언론에 대한 신뢰는 끝없이 추락했다. 시민들이 지난해 촛불집회 때 이들 방송사 취재진을 외면한 것은 언론으로서의 ‘금도’조차 넘어서버린 보도행태 때문이었다.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는 정권 앞에서 방송사들의 내부 구조는 무너졌고, ‘보도참사’라 불릴 왜곡·불공정 보도가 넘쳐났다. 그 사이에서 언론인들은 제각기 새로운 길을 찾아가거나 좌절감 속에 정체성을 고민해야 했다. 역설적이지만 가혹한 현실이 언론의 본질을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기레기’ 논란의 중심에 공영방송들이 서 있다. 

 

■정권 입맛대로 보도

 

지난 7월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내놓은 ‘2008~2017 왜곡편파보도 백서’에는 이러한 방송사들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담겼다.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만 하더라도 비판적 자세를 유지하던 KBS와 MBC는 겨우 1년 만에 ‘점령’됐다. 2008년 KBS는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을 비판했고 광우병 우려와 대책을 다각도로 짚었다. 그 해 5월6일만 해도 KBS는 <뉴스9>의 절반가량인 16꼭지를 관련 보도로 채웠다. 

 

2008년 8월 정연주 사장이 물러난 뒤 논조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둔 2009년 2월24일 <뉴스9>는 “광화문에 세워졌던 벽처럼 촛불 정국을 보는 시각은 아직 양분돼 있다”고 평했다. 넉 달 뒤에는 검찰이 MBC 을 기소했다고 보도한 뒤 ‘정부의 쇠고기 이력 추적제’를 전했다. “이제 우리 쇠고기를 더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됐다”가 첫 멘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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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29일 MBC <뉴스데스크>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다루면서 ‘4대강 사업이 곧 대운하를 위한 포석’이라는 야권의 반발과 비판 목소리를 함께 전했다. 3년이 지나자 4대강 보도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녹색성장 전도사로 나섰다”는 낯뜨거운 찬사로 바뀌었다.

 

2013년 4월18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태를 수사하기 위해 검찰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KBS <뉴스9>는 9번째 꼭지로 이 소식을 보도했다. “공직선거법상의 선거운동에 이르지는 않았다”는 경찰 발표를 삽입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23번째 꼭지로 전했다. 세탁물 분실, 꽃가루 알레르기 뉴스에도 밀렸다. 세월호 참사 때의 보도 편향은 더 심했다. ‘대통령의 눈물’이 유가족의 눈물을 가렸고, MBC 전국부장이 나서서 실종자 가족들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나라를 뒤집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조차 두 방송에선 ‘주요 뉴스’가 아니었다. 지난해 9월21일 MBC는 ‘800억원 모금 의혹…사실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입장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KBS는 12월15일 최순실씨 발언 중 “분리 안 시키면 다 죽어”라는 대목은 “대의를 안 지키면 다 죽겠어”라고 들어야 옳다는 취지의 방송을 했다. 국정감사의 성과로는 “최순실이 태블릿PC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고영태씨의 증언”을 들었다. 

 

전파를 타지 못한 뉴스도 많았다. 지난달 30일 KBS 노조는 “군 사이버사령부가 이명박 정부 당시 댓글공작 보고서를 청와대와 국방부에 보고했다는 사이버사 고위 간부의 단독 인터뷰 내용이 보도국장단의 거부로 방송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해직기자들은 대안언론으로 

 

MBC 임명현 기자는 지난 2월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MBC 현직 기자 22명을 인터뷰했다. 논문 속에서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은 ]잉여적 주체’가 됐다. 뉴스 생산에서 밀려나면서 모멸감과 두려움을 겪은 기자들의 분노는 내면으로 향했다. 언론인들 간 연대는 깨지고 고립되면서 ‘고통은 평범해지고 회사 측의 각종 폭력에 무감각해졌다’. 

 

반대로 파업에 참여했다가 복귀했거나 참여하지 않은 기자들, 파업 뒤에 입사한 경력기자들은 ‘도구적 주체’가 됐다고 임 기자는 분석했다. 이들은 뉴스를 만들면서도 옳지 못한 보도를 하고 있다는 수치심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자기검열’을 하거나 뉴스 ‘납품업자’라 자조하기도 했다.

 

더 견디지 못한 이들은 대안언론으로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2012년 1월27일 첫 방송을 한 뉴스타파는 2008년 해직됐다가 9년 만에 최근 복직한 YTN의 노종면 기자, 2010년 김재철 사장 반대 투쟁을 하다 해직된 MBC의 이근행 PD 등이 주도했다. 이후 최승호 MBC PD, 황일송 국민일보 기자, 현덕수 YTN 기자 등 해직기자들이 합류하고 KBS·MBC·YTN 등의 현직 기자들도 가세하면서 대안언론의 대표주자가 됐다.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는 2013년 4월1일 라디오방송을 시작했다. 이 방송은 보수 정권에 편향적인 종합편성채널과 지상파 뉴스에 맞서 시민들의 힘으로 언론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뉴스타파는 기성 언론 못지않은 특종과 탐사보도를 연달아 내놓았다. 후원회원은 3만명이 넘는다. 공영방송의 적폐가 대안언론의 길을 터준 셈이다. 

 

 

대안을 모색했던 이들 중 상당수는 이제 공영방송으로 되돌아가 다시 언론을 세우자며 나섰다. 경영진 사퇴를 비롯한 공영방송 정상화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스스로가 낳은 대안들과 경쟁하고 공생하는 일이 이들의 숙제로 던져지게 되는 셈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111749001&code=940705#csidxe408e365eed8ba0bca114994b70b2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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