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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 담론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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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유신과 전두환 체제에서 경험했던 '대통령 간선제'는 모두 개인의 권력욕이 빚은 것이었고, 짧은 '의원내각제' 실험은 변변한 교훈을 얻기도 전에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6월 항쟁이 안겨준 '대통령 직선제'만으로도 민주주의를 다 이룬 듯 흥분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치권 안팎에선 '제왕적' 대통령을 탓하며 다시 정부형태를 문제 삼는다. 그 와중에 권력구조의 초석이 되는 정당조직(당내민주주의)과 정당체제는 그 전근대적 후진성으로 인해 줄곧 한국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았고,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묶인 한국정치는 지역주의와 이념적 보수성의 폐쇄회로에 갇힌 채 출구를 못 찾고 우왕좌왕해 왔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났으니 정부형태 등 권력구조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동기가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는 애초에 권력구조개편의 본말을 한참 전도시킨 문제제기라 아니할 수 없다.

 

스스로 분산을 꾀하는 권력은 없다

 

예컨대 의원내각제의 모국이라는 영국도, 특히 대처 총리 이후, "선출된 독재(elective dictatorship)"의 길을 가고 있다는 지적이 드물지 않았거니와, 그 나라에서도 총리가 '제왕적'으로 될 수 있는 조건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첫째, 대표성과 관련한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선거구제는 거대 양당이 정부와 의회를 동시에 지배하는 상황을 적어도 이론적으로 확립시켰고 둘째, 의회의 제1당-종종 과반의석을 훨씬 상회하는-당수가 자동적으로 총리가 되며 셋째, 총리 한 사람이 통상 집권당 하원의원의 1/3 이상으로 채워지는 집행부(frontbenchers)의 구성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넷째, 일단 정부가 출범하면 총리는 당규율(party whip)을 동원하여 내각을 포함한 집행부 전체를 집단책임의 원리-비록 점차 약화되긴 하지만 여전히 관행화된 원칙으로 살아있는-에 묶을 수 있는 구조 등이 그것들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미국식 대통령제야말로 구태여 여소야대 상황이 아니더라도 최고 권력자의 '제왕적' 행태를 제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부형태일지 모른다. 535명의 상하의원 각자가 저마다 막강한 정책결정기관으로 기능하면서 곳곳에서 정부정책의 비토를 위협하며 의회에서의 빈번한 교차투표로 인해 입법과정을 교착상태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분산을 꾀하는 권력이란 없다. 설사 이원집정부제 등 다양하게 변형된 정부형태를 택한다 해도 실질적 권력 곧 한 사회의 자원배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힘은 결국 대통령에게든 총리에로든 쏠리기 마련이다. 가령 대통령을 상징적 권력에 가두면 실질적 권력은 총리를 향하게 돼있다. 권력의 집중(경향)을 완화할 수는 있을지언정 발본하려는 것은 어리석다.

 

실은 '제왕적'이란 말 자체가 정치적 편견에 깊이 침윤된 수사다. 원래 그것은 70년대 초 미국의 진보진영이 보수적 대통령의 독단적 외교정책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였지만 기이하게도 한국에서는 '국민의 정부' 시절 보수언론이 정부의 국내정책을 트집 잡기 위해 일상적으로 동원했던 선동적 언어였다.(『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오히려 한국처럼 권위주의 적폐에 맞서야하는 사실상 민주주의 이행기에 있는 나라의 경우는 새 제도들이 도입되고 정착되기까지 개혁의 동력은 어차피 개인 특히 대통령에서 올 수밖에 없다. 구조가 부실하면 강력한 개혁의지를 지닌 권력자의 역할이 부각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먼저 선거제도개혁과 당내 민주주의를

 

한국정치 문제의 본질은 정부형태도 '제왕적' 대통령도 아니다. 민주주의가 정당정치 위에 서 있는 한 우선 관건은 선거제도에 비례대표원리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여 권력 자체의 대표성을 확립하는 일, 곧 기존의 보수양당구조를 뛰어넘는 개방적 정당체제를 만드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종교, 인종, 언어 등 정체성정치를 부를 갈등요인이 없기 때문에 극단적 정치세력이 발호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정치권의 기득권이 현실적 장애라면 현 체제에 더하여 비례대표 지분을 대폭 늘리면 된다. 의원 수가 급격히 늘 수 있겠지만 가령 영국의 경우 하원의원 수가 19세기부터 줄곧 650명 내외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개혁적 인물을 거르는 사전적 장치로서 명실상부한 당내민주주의가 정착되도록 정당조직의 항구적 개편이 절실하다. 지난 세월이 증언하듯이 선거민주주의만으로 기회주의적, 반개혁적 인물의 정치권(재)진입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엘리트충원의 일차적 메커니즘으로서 정당민주주의는 선거민주주의와 함께 이중적 민주주의 장치의 두 축을 형성한다.

 

정당체제와 정당조직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권력구조개편을 둘러싼 작금의 모든 소동은 다시 공염불이 되고, 지역과 공천을 둘러싼 지긋지긋한 이합집산의 정치는 반복될 것이다.

 

원문보기_http://www.huffingtonpost.kr/sehoon-ko/story_b_17910270.html?utm_hp_ref=korea